일하다 다쳐서 치료를 받는 중에, 회사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산재까지 갈 것 있나, 치료비는 회사가 다 처리해줄게.” 이른바 ‘공상 처리’입니다. 병원비를 대준다니 고마운 말처럼 들리고, 회사와 얼굴 붉히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솔깃해지지요. 그런데 그 순간의 선택이 몇 달 뒤, 혹은 몇 년 뒤의 결과를 크게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공상은 회사와 맺는 민사상 합의이고 산재는 법정 보험급여 절차입니다. 공상 합의서에 “산재를 신청하지 않는다”고 적었다고 해서 공단에 대한 청구권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을 배상받고 어떤 권리를 정리했는지, 돈의 실제 성격과 지급 순서, 가해자가 회사인지 제3자인지에 따라 보험급여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차이와 이미 합의한 뒤의 선택지를 차근차근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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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 처리’, 법에는 없는 말입니다
먼저 말의 정체부터 밝혀두겠습니다. 산재 처리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이 법으로 정해진 보험급여를 지급하는 공적 절차입니다. 반면 공상 처리는 산재보험법에 정해진 급여가 아니라, 회사가 자기 비용으로 치료비나 위로금 등을 지급하기로 하는 민사상 합의를 가리키는 관행적인 표현입니다. 사적 계약으로서 효력이 생길 수 있으므로 “법에 없는 말”이 곧 “아무 효력도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차이가 모든 것의 출발점입니다. 산재는 법이 급여 종류와 요건을 정하지만, 공상은 당사자가 정한 합의 범위가 기준이 됩니다. 추가 치료나 후유증을 합의서에 어떻게 다뤘는지에 따라 나중의 민사상 권리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병원 원무과에서 일하다 보면, 다친 직원분과 함께 온 회사 담당자가 “일단 공상으로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봅니다. 그만큼 흔한 제안이라는 뜻이고, 그래서 더더욱 두 방식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선택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다섯 가지가 다릅니다
두 처리 방식이 갈라지는 지점을 나란히 놓고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법률이 정한 권리 (산재보험법)
- 요건을 충족한 요양·휴업·장해·유족급여 등 청구
- 재발·후유증도 법정 요건을 갖추면 재요양 신청 가능
- 근로복지공단이 지급 (회사 사정과 무관)
- 공단에 공식 기록이 남아 이후 절차의 근거
- 산재보험의 법정 급여가 아닌 민사상 합의
- 지급액·대상·추가 책임은 합의 내용에 따름
- 재발·후유증 보호도 합의 문구에 좌우됨
- 회사가 지급 (회사가 어려워지면 흔들림)
- 공식 기록이 남지 않음
이 중에서 하나만 기억하셔야 한다면 재발과 후유증입니다. 지금 눈앞의 치료비는 공상으로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부위가 다시 아프거나 장해가 남고, 치료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습니다. 산재로 처리했다면 각 법정 요건을 갖춰 재요양이나 장해급여를 청구할 길이 있지만, 공상 합의는 추가 치료와 후발 손해를 어디까지 포함했는지를 다시 해석해야 합니다.
회사는 왜 공상을 원할까요?
회사가 공상을 제안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산재보험료가 오른다는 걱정입니다. 그런데 이 걱정은 실제보다 많이 부풀려져 있습니다. 건설업·벌목업을 제외한 사업은 상시근로자 30명 이상이어야 산재 발생 실적에 따라 보험료율을 조정하는 개별실적요율의 적용 대상이 됩니다. 다만 일반 보험료율 등 다른 요소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산재와 보험료가 전혀 무관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적용 대상인 회사도 사고 한 건만으로 곧바로 보험료가 오르는 구조는 아닙니다.
또 하나, 공상으로 처리한다고 해서 회사의 법적 의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정리하면, “산재 처리하면 회사가 큰일 난다”는 말은 많은 경우 사실이 아니고, 오히려 재해를 숨기는 쪽이 회사에 법적 위험을 만듭니다. 근로자가 정당한 절차를 밟는 것을 망설일 이유는 없습니다.
이미 공상으로 합의했다면요?
일반적인 공상 합의서에 서명했다는 사실만으로 산재 신청 접수 자체가 막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대법원은 사용자가 준 합의금에서 근로기준법상 유족보상·장사비에 해당하는 손해를 제외한 사안에서는 그 법정 보상과 보험급여 청구권이 남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대로 합의가 실제로 어떤 손해와 사용자의 재해보상 책임까지 정산했는지는 결과에 영향을 줍니다. 따라서 제목보다 합의서 전문, 금액의 산정 근거와 지급 내역을 함께 봐야 합니다.
이미 같은 성질의 손해를 보전받았다면 산재보험법 제80조에 따라 그 범위에서 공단 급여가 지급되지 않거나, 보험급여를 먼저 받은 경우에는 사용자 등의 손해배상 책임이 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동일한 사유”는 단지 같은 사고라는 뜻이 아니라 손해 항목이 같은 성질로 서로 보완되는 경우를 뜻합니다. 치료비는 요양급여, 일하지 못한 소득은 휴업급여 등과 대응할 수 있지만, 명칭만 “위로금”이라고 적었다고 자동으로 별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회사와 쓴 일반 사문서와 법원의 제소전 화해·재판상 화해는 같지 않습니다. 법원 조서에 적힌 화해는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으므로, 적어도 회사와의 민사상 권리관계에서는 훨씬 강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서가 있으면 “공상 합의 후에도 언제나 똑같이 신청할 수 있다”고 단정하지 말고 전문 검토를 받아야 합니다.
시효도 급여마다 따로 봅니다. 산재보험법 제112조상 원칙은 3년이고, 장해급여·유족급여·장례비 등은 5년입니다. 기산점은 사고일 하나로 일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각 급여를 청구할 수 있게 된 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최초 청구에는 다른 급여의 시효까지 중단시키는 규정(제113조)도 있으므로, 오래된 사고라면 날짜를 스스로 단정하지 말고 바로 확인해야 합니다.
공상이 자연스러운 영역도 있습니다
균형을 위해 이 이야기도 해야겠습니다. 산재보험의 요양급여는 부상이나 질병이 3일 이내의 요양으로 치유될 수 있으면 지급하지 않습니다(산재보험법 제40조 제3항). 하루 이틀 통원 치료로 끝나는 가벼운 상처라면 애초에 산재 요양급여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런 경미한 재해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용자가 요양비를 부담하도록 되어 있어서, 회사가 치료비를 직접 처리하는 모습 자체는 법의 설계와 어긋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경계를 넘는 부상, 즉 며칠 이상 일을 쉬어야 하거나 치료가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는 부상까지 공상으로 덮으려 할 때 생깁니다. 지금 내 부상이 어느 쪽인지 애매하다면, 의사의 진단 소견이 판단의 출발점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공상 합의서에 서명했는데, 이제 와서 산재 신청이 되나요?
공상이 산재보다 유리한 경우는 없나요?
산재 처리하면 회사에 큰 불이익이 간다던데, 사실인가요?
공상으로 치료받는 중인데 치료가 자꾸 길어집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
산재냐 공상이냐를 가르는 기준은 “지금 받는 금액”이 아니라 “치료가 길어졌을 때, 그리고 다 나은 뒤에 다시 아파졌을 때 나를 지켜주는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공상은 그 답이 합의 내용에 따라 달라지고, 산재는 각 요건과 절차를 법으로 정해 둡니다. 어떤 사고가 산재의 출발점인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는지는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 글에서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다만 이미 받은 공상 합의금과 법정 급여가 얽혀 있거나 제3자 합의·법원 화해 문서가 있다면, 혼자 계산을 밀어붙이기보다 노무사·변호사 등 전문가와 합의 범위와 시효를 함께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이 글이 그 갈림길에서 방향을 잡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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