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나라에서 일하다 다치면 걱정이 두 겹으로 밀려옵니다. 치료와 보상이라는 문제 위에, “나는 외국인인데 신청해도 되는 걸까”, 심하게는 “신고했다가 쫓겨나는 것 아닐까” 하는 신분 걱정이 얹어지지요. 다친 본인만이 아니라, 외국인 동료나 직원을 둔 사업주, 가족분들도 같은 지점에서 막히십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국내 산재보험 적용 사업장에서 실질적으로 임금을 목적으로 사용자의 지휘를 받아 일한 근로자라면, 외국 국적이나 취업 자격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산재 신청이 막히지는 않습니다. 대법원도 취업 자격 없이 일하던 외국인의 근로자 지위와 요양급여 대상성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산재 권리와 체류 문제는 서로 다른 제도이고, 급여 지급 단계에도 해외 거주 외국인에 관한 일부 예외가 있으므로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Contents 목차 06 SECTIONS
원칙부터: 산재보험의 적용과 신청에는 국적 조건이 없습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6조는 원칙적으로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된다”고 정합니다. 일부 법정 적용 제외 사업을 빼면, 핵심은 국내 적용 사업장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일했는지입니다. 즉 계약 이름이나 국적이 아니라 임금을 목적으로 사용종속관계에서 일을 제공했는지를 봅니다(산재보험법 제5조 제2호). 이 근로자 정의에 국적이나 비자 종류는 요건으로 들어 있지 않습니다.
- 적용 기준
- 근로자를 사용하는 국내 사업장이 원칙이며 법정 적용 제외는 별도 확인 (법 제6조)
- 근로자란
- 임금을 목적으로 사용종속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 (국적 요건 없음)
- 보험료
- 사업주가 부담 (근로자는 내지 않음)
- 적용 방식
- 가입 신고와 무관하게 법으로 자동 적용
그래서 고용허가제(E-9)나 방문취업(H-2) 자격으로 합법적으로 일하시는 외국인 근로자는 당연히, 처음부터 산재보험의 보호 안에 있습니다. 사업주가 “외국인은 안 된다”고 말했다면 그것은 제도를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산재보험이 어떤 제도인지 큰 그림이 궁금하시다면 산업재해보상보험이란? 글을 먼저 보셔도 좋습니다.
비자가 없어도, 미등록 상태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까지는 “합법 취업자” 이야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취업 자격 없이 일한 경우, 흔히 말하는 불법체류 상태라면 어떨까요. 결론은 같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30년 전에 대법원이 내렸습니다.
산업연수 자격으로 입국했다가 자격 외 취업을 하던 중 프레스 작업에서 다친 태국인 근로자의 사건에서, 대법원은 1995년 이렇게 판단했습니다(대법원 1995. 9. 15. 선고 94누12067 판결).
취업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라도,
“사용종속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았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이며, 산재보험의 요양급여 대상이 됩니다.대법원 1995. 9. 15. 선고 94누12067 판결 취지
판결의 핵심은 출입국관리법의 취업 제한이 취업 자격 없는 외국인의 고용 자체를 규율하더라도, 이미 제공한 근로에서 생긴 노동관계법상 권리까지 없애는 규정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취업 자격이 없다는 사정만으로 근로계약이 당연히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고, 사고 당시 실제 사용종속관계에서 일하며 임금을 받았다면 산재보험상 근로자가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이 판결이 취업이나 체류 위반 자체를 적법하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외국인 근로자가 가장 많이 하는 세 가지 걱정
원칙은 분명한데, 현실에서는 세 가지 걱정이 신청을 막아섭니다. 하나씩 보겠습니다.
① “사장님이 산재보험에 가입 안 했다는데요”
관계없습니다. 산재보험은 사업주의 가입 신고 여부와 무관하게 법에 따라 자동으로 적용됩니다. 사업주가 신고를 안 했거나 보험료를 안 냈다면 그 책임은 사업주가 지는 것이고, 근로자의 보상 권리는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산재보험이 없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 문장입니다.
② “회사가 산재 처리를 안 해주겠다는데요”
산재는 회사가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법 제41조는 요양급여를 다친 근로자 본인이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하도록 정하고 있고, 신청서에 사업주의 서명이나 동의를 받는 절차 자체가 없습니다. 회사가 반대해도 신청은 언제든 할 수 있습니다.
주의하실 것은 오히려 “병원비를 회사가 대줄 테니 산재는 하지 말자”는 이른바 공상 처리 회유입니다. 당장은 편해 보여도 나중에 치료가 길어지거나 장해가 남으면 보호받을 길이 좁아집니다. 무엇을 잃게 되는지는 산재 처리 vs 공상 처리, 무엇이 다르고 무엇을 잃게 되나요?에서 자세히 정리했습니다.
③ “신고하면 강제출국되는 것 아닌가요”
미등록 상태이신 분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지점입니다. 여기서는 산재 보상과 출입국 처분을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됩니다.
산재 보상은 체류 자격과 별개로 판단하는 권리입니다. 그러나 산재 승인만으로 합법적인 체류자격이 새로 생기거나 기존의 강제퇴거 사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산재를 신청했다고 그 사실만으로 즉시 강제퇴거가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다른 기관이 각 법에 따라 판단합니다.
출입국관리법 제84조는 국가·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직무 중 법 위반 외국인을 발견하면 원칙적으로 출입국관서에 알리도록 하되, 피해 구제가 우선인 일부 업무에는 예외를 둡니다. 현행 시행규칙 제70조의2는 일정 범죄 수사, 인권침해 조사·구제, 노동관계법령에 따른 사업장 임금체불 등 위반사항의 조사·감독 등을 열거합니다. 임금체불 관련 예외는 2025년 11월 6일부터 시행됐습니다.
산재 신청의 기본 절차는 내국인과 같습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별도의 인정 기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요양급여신청서를 근로복지공단에 내고, 공단이 근로자성·재해 경위·업무 관련성을 조사해 결정하며, 승인된 범위에서 치료비와 휴업급여 등을 지급하는 기본 구조는 같습니다. 다만 외국어 서류와 통역, 신원 확인, 국내외 계좌·거주 상태에 따른 추가 서류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방법과 서류는 아래 글에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병원 창구에도 외국인 환자분이 산재로 접수하시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절차 자체는 내국인과 똑같이 진행되지만, 재해 경위를 한국어로 정리하는 일이나 서류의 뜻을 이해하는 일에서 확실히 벽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언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창구를 알아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 외국인력상담센터
- 1577-0071 (한국어 포함 18개 언어 상담)
- 고용노동부 상담센터
- 1350 (고용·노동 전반)
- 출입국민원 상담
- 1345 (체류·통보의무 면제 범위 확인)
특히 재해 경위서는 “언제, 어디서, 무슨 작업을 하다, 어떻게 다쳤는지”가 사실대로 또렷하게 적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통역이 가능한 동료나 가족, 상담 창구의 도움을 받아 정확하게 작성하시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자주 묻는 질문
관광비자로 왔다가 일하던 중 다쳤어도 되나요?
산재보험료를 낸 적이 없는데 보상을 받아도 되나요?
회사가 협조를 거부하면 신청을 못 하는 것 아닌가요?
치료가 이미 끝났는데 이제라도 신청할 수 있나요?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
산재보험의 문은 국적만으로 닫히지 않습니다. 국내 적용 사업장에서 실질적으로 근로하다 업무상 재해를 입었다면, 취업 자격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생긴 산재 권리까지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법과 대법원 판례가 확인하고 있습니다.
다만 미등록 상태에서의 신청처럼 신분 문제가 얽히거나, 회사가 근로 사실 자체를 부인해 입증이 어려워지는 사안이라면, 판단이 까다로워지는 지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혼자 감당하기보다 이주민 지원 기관이나 노무사 등 전문가와 함께 길을 잡아 보시기를 권합니다. 다친 몸을 추스르는 것이 먼저이고, 제도는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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