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누군가에게 맞아 다치면, 대부분 산재라는 생각을 못 하십니다. 사람한테 맞은 건 개인 사이의 일이고 경찰서 갈 일이지 공단 갈 일은 아니라고 여기시는 것이지요. 실제로 산재 접수 창구에서도 폭행으로 다치신 분은 드물게 뵙습니다.
그런데 법은 다르게 봅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33조는 이렇게 정하고 있습니다.
제3자의 행위로 근로자에게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
“그 근로자가 담당한 업무가 사회통념상 제3자의 가해행위를 유발할 수 있는 성질의 업무라고 인정되면”
그 사고는 법 제37조 제1항 제1호 바목에 따른 업무상 사고로 봅니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33조(제3자의 행위에 따른 사고)
결론부터 말하면 일터에서 맞았다는 장소·시간만으로 자동 인정되지는 않지만, 고객 응대나 업무 처리 다툼처럼 직장 안의 인간관계 또는 직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이 현실화된 경우에는 산재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적 원한이 원인이거나 피해 근로자가 직무의 한도를 넘어 상대방을 자극·도발한 경우에는 업무 관련성이 끊길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그 경계를 법원이 어떻게 판단했는지 판결 세 건으로 살펴봅니다.
Contents 목차 07 SECTIONS
법원이 쓰는 문장은 하나입니다
폭행 사건의 판결문을 여러 건 읽으면 같은 문장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대법원이 세워둔 판단 기준이라 하급심이 그대로 인용하기 때문입니다.
근로자가 타인의 폭력에 의하여 재해를 입은 경우라도, 가해자의 폭력행위가 피해자와의 사적인 관계에서 기인하였다거나 피해자가 직무의 한도를 넘어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도발함으로써 발생한 경우에는 업무기인성을 인정할 수 없으나,
“그것이 직장 안의 인간관계 또는 직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이 현실화되어 발생한 것으로서 업무와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으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17. 4. 27. 선고 2016두55919 판결
한 문장에서 실제 판단의 축을 나누면 셋입니다.
- 1직장 안의 인간관계나 직무에서 비롯됐는가업무 처리 방식, 지시, 배치 같은 일 때문에 생긴 다툼인가를 봅니다
- 2사적인 관계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가일터에서 벌어졌더라도 개인적 원한이 원인이면 업무기인성이 끊깁니다
- 3직무의 한도를 넘어 도발하지는 않았는가피해자 쪽이 먼저 상대를 크게 자극한 경우는 달리 봅니다
“일하다 맞았으니 산재”도 아니고 “싸움이니 산재 아님”도 아닙니다. 위 요소는 기계적인 세 관문이라기보다 다툼의 전체 경위를 놓고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하는 축입니다. 업무와 재해 사이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쪽이 입증해야 하므로, 폭행이 있었는지뿐 아니라 그 폭행으로 청구 상병이 생겼는지도 자료로 연결해야 합니다.
같은 총격, 갈린 결론
기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2012년 2월, 한 공장 정문 앞마당에서 총격이 있었습니다. 3년 전 그 회사에서 수습사원으로 석 달 근무했던 사람이 차를 몰고 와 엽총으로 열 발 넘게 쐈습니다. 제품 출하 작업을 하던 생산관리팀장이 스물여덟 군데에 총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숨졌고, 함께 있던 동료도 흉부 관통상을 입었습니다.
공단은 팀장의 유족에게는 유족급여를 지급하지 않았고, 함께 총상을 입은 동료에게는 요양급여를 지급했습니다. 유족이 낸 소송에서 법원도 부지급이 적법하다고 봤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12구합18226).
- 가해자는 3년 전 퇴사한 사람으로, 사전에 행방을 탐문하고 범행 도구를 준비
- 생산직 관리라는 업무 자체에 제3자의 가해 위험이 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
- 퇴사 3년 뒤의 일이라 직장 안의 인간관계에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주로 보기 어렵다고 봄
- 개인적인 앙심에서 비롯된 조준 범행으로 평가
-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출하 작업 중이었음
- 가해자와 개인적 관계가 없었고 표적도 아니었음
- 공단이 요양급여 지급을 결정
같은 총격에서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표적 여부와 그 자리에 있던 업무상 이유에 따라 결론이 달랐습니다. 다만 한 사건의 사실판단을 “표적이면 언제나 불인정, 우연히 맞으면 언제나 인정”이라는 공식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가해 감정이 직장 내 업무 관계에서 생긴 것인지, 시간이 흐르며 사적인 보복으로 전환됐는지까지 개별적으로 봅니다.
누가 먼저 때렸는지는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기준은 아닙니다
가장 많이 오해받는 대목입니다. 앞서 인용한 대법원 2016두55919 사건은 선행 폭행이 있었다고 곧바로 업무상 재해를 부정할 수 있는지를 다룹니다.
야간근무 중이던 공장 반장이 후배 직원과 회사에서 주는 야식비를 어떻게 쓸지를 두고 말다툼을 했습니다. 후배가 “갈취”라는 말을 쓰자 반장이 격분해 폭력을 행사했고, 동료들이 말린 뒤에 대걸레 막대기를 들고 다시 싸웠습니다. 그리고 그 직후 기력을 잃고 쓰러져 약 두 시간 뒤 급성 심장사로 숨졌습니다.
먼저 폭행한 쪽이 숨진 사건입니다. 원심은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봤지만, 대법원은 이를 파기하고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야식비 사용이라는 업무 처리 문제에서 다툼이 시작됐고, 상대방이 먼저 “갈취”라는 공격적 표현을 했으며, 근무 중 회사 안에서 벌어졌고 사적인 원한도 보이지 않았다는 사정을 함께 봤습니다. 근로자의 폭행이 상대방의 공격을 거쳐 사망에 간접적·부수적으로 영향을 준 사정만으로 법 제37조 제2항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된 재해”라고 볼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물론 먼저 때려도 괜찮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선행 폭행의 정도와 경위는 “직무의 한도를 넘은 자극·도발”인지, 범죄행위가 재해의 직접 원인인지 판단하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이 판결의 뜻은 선행 폭행이 있어도 다툼의 발단과 전개, 직접 원인을 모두 살펴야 한다는 것이지, 가해행위를 가볍게 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공단이 안 된다고 한 사건이 뒤집히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최근 사건입니다(서울행정법원 2023구단56906).
건설 현장 사토장에서 신호수가 덤프트럭 열다섯 대에 신호봉으로 위치를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한 트럭 기사가 신호를 잘못 줬다며 시비를 걸었고, 운전석에서 내려와 신호수의 목을 치고 바닥에 넘어뜨렸습니다. 신호수는 요추 염좌와 타박상으로 요양급여를 신청했습니다.
공단은 불승인했습니다. 이유는 이랬습니다. 누가 먼저 가해했는지 주장이 엇갈리고, 경찰 조사와 판결문에는 신호수가 먼저 욕설을 했고 트럭 밑으로 들어가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법원은 이 처분을 취소했습니다. 판단을 따라가 보면 이렇습니다.
- 다툼의 성격
- 둘 사이에 평소 사적인 원한이 없었고, 신호를 보낸 방식을 두고 벌어진 업무 처리 방식에 관한 다툼이었음
- 누가 무엇을 했나
- 기사는 신체적 폭력으로 상해를 입혔고 신호수는 언어로만 대응했으므로 책임의 무게가 다르다고 봄
- 차 밑으로 들어간 행위
- 다툼이 1차로 끝난 뒤 상해를 입자 항의 차원에서 한 행동이라, 이를 이유로 업무기인성이 차단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
눈여겨볼 것은 법원이 신호수의 욕설과 사후 행동도 숨기지 않고 전체 경위 안에서 평가했다는 점입니다. 그 행위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앞선 업무 관련 폭행과 상병 사이 연결이 모두 끊겼다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다른 사건에서는 같은 표현이나 행동도 강도·시점·상대방 반응에 따라 직무 한도를 넘은 도발로 평가될 수 있으므로, 이 결론을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공단 단계에서 막혔다고 끝이 아니라는 점도 함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불복의 구조는 산재 불승인 받았다면, 불복 경로와 90일 기한부터 살펴보세요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내 상황을 가늠하는 질문
세 사건을 관통하는 것을 질문으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 다툼의 발단이 업무였나: 작업 방식, 지시, 배치, 인수인계, 금전 처리 같은 일에서 시작됐는가
- 상대와 사적인 관계가 있었나: 일과 무관한 원한이나 채무 같은 개인 사정이 원인은 아닌가
- 내 대응이 어느 선까지였나: 말로 대응했는가, 아니면 먼저 크게 자극·도발했는가
-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나: 근무 시간, 근무 장소, 담당 업무 수행 중이었는가
- 기록이 남아 있나: 경찰 사건 접수, 진술서, CCTV, 동료 목격, 상해진단서
특히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폭행 사건은 사실관계 다툼으로 흐르기 쉬운데, 앞서 본 신호수 사건에서도 경찰 수사 결과와 약식명령의 범죄사실, 상해진단서가 판단 자료가 됐습니다. 다만 형사절차의 결론이 산재 판단을 자동으로 구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형사자료는 누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밝히는 중요한 자료이고, 공단과 법원은 여기에 업무 관련성과 의학적 인과관계를 더해 별도로 판단합니다.
한 가지 더 짚어드리면, 고객이나 민원인에게 당한 폭행도 같은 틀로 봅니다. 갈등 상황을 자주 상대하는 응대 업무는 시행령 제33조의 “사회통념상 제3자의 가해행위를 유발할 수 있는 성질의 업무”인지 검토할 여지가 크지만, 직종명만으로 자동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폭언과 괴롭힘이 몸의 상처가 아니라 마음의 병으로 남은 경우는 다른 틀로 다루는데, 그 이야기는 직장 내 괴롭힘 산재, 마음의 병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상대를 고소해서 형사 합의금을 받으면 산재는 못 받나요?
회식 자리에서 시비가 붙어 다쳤습니다. 어느 기준으로 보나요?
가해자가 누구인지 끝내 밝혀지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폭행으로 생긴 정신적 충격도 산재가 되나요?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
폭행을 당하고 나면 억울함이 앞서서 “누가 잘못했는지”를 먼저 따지게 됩니다. 그런데 산재 판단에서 법원이 보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잘잘못을 가리는 자리가 아니라, 그 폭력이 그 일을 하다 보면 생길 수 있는 위험이었는지를 보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기억해 두실 것은 두 가지입니다. 일에서 비롯된 다툼이라도 폭행의 전 과정을 살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터에서 벌어졌더라도 사적인 원한이나 직무 한도를 넘은 도발이 원인이면 인정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산재 인정은 민·형사상 잘잘못을 면제하는 판단도 아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맞은 그날의 기록을 남겨두시기 바랍니다. 경찰에 신고하고 진단서를 떼어두는 일이 그 순간에는 번거롭고 내키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 자리가 어떤 자리였는지를 말해주는 것은 결국 그날 남은 종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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